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생애 (문단 편집) === 영국 총독, 허드슨 로 === 설상가상으로 영국에서 세인트헬레나의 [[총독]]으로 파견된 동갑인 '허드슨 로'(1769년 7월 28일 ~ 1844년 1월 10일/Sir Hudson Lowe)가 나폴레옹을 학대했다. 본국 영국에서도 욕만 죽어라 듣던 그는 [[영국군]] 내에서도 휘하 [[부하]]들한테 [[가혹행위]]를 벌여 평이 나빴고, 개차반같은 성격 때문에 부임지마다 주변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게다가 무능하기 짝이 없어서[* 사실 허드슨 로는 전투에 많이 참가하며 공적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성격이 좋지못하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워낙 나뻤기 때문에 공적을 세우고도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부하들을 마구 다뤄 이겨도 아군 피해도 큰 [[피로스의 승리|상처뿐인 승리]]라는 평도 지배적이었다.] 한직만을 전전한 인간이었고, 총독이 되기 전에도 장교에서 조기 퇴직 대상이었다. 영국 내에서도 이 인간에 대한 평은 전혀 좋지 못해서 [[신사]]가 아니라고 부정당하기도 했다. 이 세인트 헬레나는 지금도 워낙에 외딴 시골 섬이나 다를 거 없는데 하물며 200여년 전 당시에는 여길 가는 곳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더더욱 외딴 곳이었으므로 이런 곳의 총독이라는 직위도 말이 좋아 총독이지, 자세히 보면 이것도 한직에 지나지 않는다. 허드슨 로 본인도 이런 머나먼 섬 구석 총독이란 허울좋은 이름으로 보낸 것도 한직 축출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 좌천이나 다를 바 없는 조치에 대해 그야말로 분노하였다. 그래서 세인트헬레나에서도 그 버릇 못 고치고, 밑사람들을 박대했다. 쓸데없이 자존심이 쎈 허드슨은 초반부터 자신에게 굽히지 않는 나폴레옹을 굉장히 미워하여[* 나폴레옹 역시 자존심이 강하여 죽을 때까지 허드슨에게 굽히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거주하던 롱우드 하우스 주변에 감시병을 배치해 가택연금 했으며 병사들로 하여금 황제라는 칭호 대신 장군이라고 부르게 시키는 등 모욕적인 조치를 취했고 그도 나폴레옹을 이런 식으로 욕했다. 또한 처우 면에서는 주치의를 강제로 영국으로 보내버리고 장작 공급을 제한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 나폴레옹을 구타했다거나 침을 뱉어놓은 썩은 포도주를 면전에 퍼부었다거나, 읽던 책을 보는 앞에서 빼앗아 찢어버렸다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찾아가 뒤통수를 때리며 화풀이를 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그 근거와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삭제 조치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https://namu.wiki/thread/AnInstinctiveAndHighfalutinLocket|참고 바람]].] 나폴레옹이 장작이 부족해 가구를 대신 태우기도 했다는 소문에 유럽의 여론은 들끓었고, 영국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었을 정도였다. 특히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상대한 [[아서 웰즐리|웰링턴 공작]]도 허드슨 로를 두고서 "질투심과 시기심에 가득 찬 한심한 인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통 적장을 포로로 잡게 된다면 그 적장을 유배를 보내든 사형(또는 참수)을 시키든 그에 걸맞는 예우를 갖추는 것이 보통이나, 허드슨 로의 행위는 이와 반대되는 행위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영국 언론들조차도 "적이라고 해도 그만큼 능력있고 유럽을 공포로 떨게 한 사람을 이렇게 푸대접하는 것은 오히려 영국 망신시키는 것이다. 로 총독도 유배지가 아닌 전쟁터에서 나폴레옹을 만났더라면 져서 죽었을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오히려 로를 욕하였다. 허드슨에게 박대당하는 유배 생활과 지병으로 인해 나폴레옹은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특히 나폴레옹을 증오하는 허드슨이 주치의를 영국으로 보내버리고 의사를 보내주지도 않았기에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에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후 부검을 통해 사인이 [[위암]]임이 발표되고 데스 마스크가 제작되었으며 그의 시신은 세인트헬레나 섬에 묻힌다. 허드슨 로는 나폴레옹이 죽고 나서 나폴레옹 주치의이자 (실상은 첩자이기도 하던) 오미어러의 고발로 파면당한다. 신하들이 반발하며 "저런 곳에서도 일을 저 모양으로 하니 더 이상 쓸모 없사옵니다! 따라서 아예 벼슬자리를 박탈해야 하옵니다"라고 하였으나, 그나마 [[조지 4세]]의 배려로 한직인 Ceylan 지역의 부대장 자리를 전전했다. 결국 허드슨 로는 [[경]] 작위는 받고 74세까지 장수하며 평온하게 적당히 살다가 갔다. 하지만 허드슨 로가 역임했던 직책중에 [[소장(계급)|소장]] 계급과 세인트 헬레나 총독이 그나마 가장 높은 벼슬이었고 실질적으로는 강등이나 좌천과 다를바 없었기에 마냥 좋다고 할 수 없다. 이후 허드슨 로가 전진하던 벼슬들은 모두 기지 부대장이라든지 중간관리자로서 한직이었고 상관 눈치를 봐야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영국 왕 [[조지 4세]]나 뒤를 이은 [[윌리엄 4세]]도 로에 대하여 '''"아부는 잘하는데 됨됨이가 영 아니다"'''라고 깠을 정도였다. 이렇게 인망이 없으니 죽었을 때 [[장례식]]에서도 조문객은 식솔들과[* 허드슨 로는 결혼을 늦게 했는데 46세인 1815년에 귀족 가문의 여성인 수잔 존슨과 결혼하여(남편인 윌리엄 존슨과 사별한 후에 결혼한 재혼이었다. 수잔은 윌리엄과의 사이에서 2명의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요절했고 차녀가 발메인 백작과 결혼하여 독립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얻었다. 로가 장수했기에 아내는 1832년에 로보다 일찍 사망했다.] 극소수 친척들만이 참석했을 정도다. 이는 로가 죽기 4년 전에 나폴레옹의 유해가 성대한 인파의 환영을 받으면서, 파리 [[앵발리드]]에 복귀한 것과 대비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